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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12지파

 

   < 기독교 역사 >

        1,  천지창조    2,  에덴동산    3,  아담과 하와    4,  노아시대    5,  바벨탑 사건   6,  족장시대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7,  이스라엘 12지파 

        8,  출애굽 광야시대   9, 정복시대  10, 사사시대  10-1,  이스라엘 선지자   11,  이스라엘 통일왕국시대  12,  이스라엘 분열왕국시대  13, 포로시대

       14,  포로귀환시대   15, 중간시대   16,  예수님시대   17,  초대교회시대  18,  속사도시대   19,  니케아 공의회   20,  중세교회사    21,  근대 교회사

 

       각 지파  약사     

1

 르우벤

 

      르우벤 지파의 명칭은 야곱의 첫번째 아내인 레아 소생의 아들 중 장자의 이름을 땄다. 이집트로부터 탈출한  후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족속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 그 땅을 12지파에게 나누어 주었다.

      르우벤 지파는 가드(갓) 지파가 차지한 곳과 같은 지역인 사해 동쪽에 정착했으며, 유대 민족의 역사에서는 부차적인

      역할을 했다. 솔로몬 왕의 죽음(BC 922) 이후 북쪽 10지파는 여로보암 1세의 영도 아래 이스라엘 왕국을 세웠는데

      이 왕국은 BC 721년 아시리아 침략으로 멸망했다. 얼마 안 가서 이들 북부 지파들은 이방 민족들과 동화됨으로써

      동질성을 상실했고, 르우벤 지파는 이스라엘의 사라진 10지파 중 하나가 되었다.

2

 시므온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탈출한 뒤 모세가 죽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민족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했으며,

      12지파에게 새 영토를 분할했다. 시므온 지파가 정착한 지역이 어디인지 정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강력했던

      유다 지파의 위쪽, 즉 팔레스타인 남부에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시므온 지파의 일부는 오래지 않아 유다 지파에

      흡수된 것이 분명하지만 다른 일부는 북쪽으로 이주한 것 같다. 솔로몬왕이 죽은(BC 922) 뒤 팔레스타인은 북쪽의

       이스라엘 왕국과 남쪽의 유다 왕국으로 분열되었다. 만일 시므온 지파가 북왕국을 이루고 있는 지파들에 속한다면,

       BC 721년 이스라엘 왕국이 아시리아에 멸망당한 이후 시므온 지파 역시 다른 민족들에게 동화했을 것이다.

       이러한 방식이었든지 아니면 다른 방식이었든 지간에 시므온 지파는 역사에서 사라져 '이스라엘의 사라진 10지파'

       중 하나가 되었다.

3

 레위

 

      레위인은 원래 야곱과 그의 첫째 아내인 레아 사이의 셋째 아들, '레위'(Levi)의 이름. 레위인은 이스라엘의 12지파와

      는 달리 자신들 소유의 땅을 할당받지 않았고, 나라 전역에 걸쳐 48개 도시에 흩어져 살았기때문이다(민 35:1~8).

      사제로서 "이스라엘의 하느님께 바친 번제물이 레위인의 유산"이었기 때문이다(수13:14). 수세기에 걸쳐 레위인의

      사제적 기능이 분명히 변했기 때문에 역사가들은 아론(그 자신이 레위의 후손임)의 후손인 사제계급과 레위인 사이

      의 관계에 대해 아직도 만족할 만한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아론 계열의 사제들은 분명히 유대 사제로서 유일한

      권리를 얻었다. 공중예배와 관련된 부차적 임무를 수행했던 사람들이 레위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 레위인들은 음

      악가·문지기·감시인·성전관리인 재판관·장인(匠人)들이다. 현대 유대 회당의 관습에 의하면 예배를 드릴 때 율법의

       2번째 부분 낭독을 축복하기 위해 레위인 한 사람이 나온다.

4

 유다

 

     야곱과 그의 아내인 레아 사이에서 넷째 아들로 태어난 유다의 후손들이다. 유다라는 이름이 원래 지파의 이름인지

      아니면 그 지파가 살던 지명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이스라엘 민족이 약속의 땅을 차지한 뒤, 각 지파는 모세 사

      후에 그를 계승하여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에게서 그 땅의 일부를 할당받았다. 예루살렘의 남부지방에 정착한 유다

      지파는 차츰 가장 강력하고 중요한 부족이 되었다. 이 지파는 다윗과 솔로몬 등 위대한 왕들을 배출했고, 이 지파로

      부터 메시아가 나온다는 예언도 있었다. 현대의 유대인들도 그들의 조상을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유다 지파에

      흡수됨) 혹은 종교적 기능을 담당한 레위 지파까지 거슬러 올라가 찾는다. 이러한 상황은 BC 721년 아시리아의 북

      이스라엘 왕국 점령으로 변하게 되었는데, 10개의 북부 지파는 부분적으로 분산되거나 다른 민족에 점차 동화되었

      다(이들을 이스라엘의 사라진 10지파라고 부름). 남 유다 왕국은 BC 587년까지 번창하다가 바빌로니아에 정복당

      했는데, 이때 많은 주민이 포로로 끌려갔다. 페르시아가 BC 538년 바빌로니아를 정복하고, 키루스(고레스) 대왕이

      유대인에게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허락했을 때, 이들은 바빌로니아인들이 파괴한 예루살렘 성전을 복원하는 사업에

      곧 착수했다. 그후부터 유다 지파의 역사는 유대인의 역사가 되었다.

5

 단

 

      이 12지파는 구약성서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을 이루었으며, 이들 가운데 일부가 후에 유대민족이 되었다. 단 지파의

      이름은 야곱(이스라엘이라고도 함)과 야곱의 2번째 아내 라헬의 여종인 빌라 사이에서 태어난 두 아들 중 큰아들의

      이름을 딴 것이다. 나머지 11지파 가운데 9지파의 이름도 야곱의 아들들의 이름을 따서 붙였으며, 2지파는 야곱의

      손자 즉 요셉의 아들들의 이름을 따랐다. 모세가 죽은 뒤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수아의 인도를 받아 약속의 땅으로

      들어갔고, 여호수아는 영토를 12지파에게 나누어 주었다. 단 지파가 받은 땅은 예루살렘 서쪽지역이었다. 이 지파

      가운데 일부 사람들은 북동쪽 끝으로 이주하여 라이스 성을 빼앗고 이곳을 단이라고 불렀다. 이 성은 이스라엘 최

      북단에 있는 성인데, '단에서 베에르셰바까지'라는 문구가 여기에서 유래했다. 단 지파의 위대한 영웅은 삼손이다.

      삼손은 들릴라의 술수에 빠져 이스라엘을 저버리기 전까지는 필리스티아(블레셋) 침입자들에 대항해서 용맹을 떨

      쳤다. 단은 아시리아가 BC 721년에 이스라엘 왕국을 정복한 뒤에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 버린 북쪽의 10지파 가

      운데 하나이다. 이 10지파는 유대 전설에서는'이스라엘의 사라진 10지파'라고 알려져 있다.

6

 납달리

 

       이 지파의 이름은 야곱과 그의 2번째 아내인 라헬의 하녀 빌라 사이에서 난 두 아들 중 동생의 이름을 따른 것이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약속의 땅에 들어간 뒤 새 땅을 12부족에게 나누어주면서 납달리 부족에게는

       갈릴리 호수 북서쪽지역을 배정했다.  BC 922년 솔로몬 왕이 죽은 뒤 북부의 10지파는 다윗 왕조로부터 분리하여

       독자적인 이스라엘 왕국을 세웠다. BC 734년 납달리 지파가 아시리아 왕 티글랏빌 레셀 3세에게 정복당했고, BC

       721년에는 이스라엘 왕국 전역이 그의 군대에 장악되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노예로 끌려가거나 이스라엘 땅에

       그대로 남게 되었는데 이들은 점차 다른 민족들과 동화되었다. 그리하여 납달리 지파는 민족성을 잃어버렸고, 유

       대인의 전설 속에서도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10지파 중 하나로 알려지게 되었다.

7

 갓

 

        이스라엘 백성의 일부는 훗날 유대인이 되었다. 이 지파의 이름은 야곱과 그의 첫번째 아내 레아의 여종 질바(실바)

       사이에서 난 두 아들 가운데 맏아들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다.  이스라엘 민족이 약속의 땅에 들어간 뒤에 각 지파는

       모세가 죽은 뒤 대신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로부터 땅을 분배받았다. 이때 가드 지파는 요르단 강 동편 땅에 정착했고,        군사적인 용맹으로 명성을 얻었으며, BC 930년 여로보암 1세를 왕으로 삼아 따로 왕국을 세운 북이스라엘의 10지파

       가운데 하나였다. BC 721년  아시리아가 이스라엘 왕국을 정복하자 10지파들은 각각 흩어졌고, 나중에는 이방민족

       들에 흡수되었다. 따라서 가드 지파는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10지파'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8

 아셀

 

        야곱(이스라엘이라고도 함)이 첫번째 아내 레아의 몸종 질바에게서 낳은 두 아들 가운데 작은아들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을 차지한 뒤 여호수아는 12개 지파에게 각각 땅을 할당해주었다. 아셀 지파는

        즈불룬 지파의 위쪽이자 납달리 지파의 서쪽에 해당하는 팔레스타인 북부 지역의 페니키아인들 사이에 정착했던

        것이 분명하다. 솔로몬 왕이 죽자(BC 922) 이스라엘 백성은(10지파를대표하는)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로

        분열되었다. BC 721년 북왕국이 아시리아인들에게 정복당했을 때 아셀지파를 포함한 10지파는 부분적으로 흩어

        졌고 얼마 뒤 다른 민족과 동화되었으므로 독특한 민족 단위로서는 사라지게 되었다. 유대인 전설에서는 이들을

        '이스라엘의 사라진 10지파'라고 한다.

9

 잇사갈

 

        이 부족의 이름은 야곱과 그의 첫번째 부인 레아 사이에서 난 5번째 아들의 이름을 딴 것이다. 모세가 죽은 후 여호

        수아는 약속의 땅으로 이스라엘인들을 인도하여 12지파에게 땅을 분배해주었다. 이싸갈 지파는 요르단 강 서안과

        갈릴리 해 남단의 남동지역에 정착했다. 솔로몬 왕이 죽은 후(BC 922) 북쪽의10지파가 따로 이스라엘 왕국을 세웠

        는데, 이싸갈은 그 중에 속했으며, 이 왕국은 BC 721년 아시리아에게 멸망당했다. 결국 10부족은 각기 여러 지역으

        로 흩어져 동질성을 상실하고,'이스라엘의 사라진 10지파'로 알려지게 되었다.

10

 스블론

 

        성서 시대에는 이스라엘 민족의 하나였으며 이후에는 유대민족이 되었다. 이 지파의 이름은 야곱과 그의 첫 번째

        부인 레아 사이에서 낳은 6번째 아들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이스라엘인들이 약속된 땅을 차지한 뒤 여호수아는

        새로운 영토를 12지파에게 분할했는데 스불론 지파에게는 주로 이스라엘 평야 북동쪽에 위치한 비옥한 토지가 주

        어졌다. 솔로몬 왕이 죽은(BC 922) 뒤 이스라엘인들은 북왕국 이스라엘(10지파를 대표)과 남왕국 유다로 나누어

        졌다. 북왕국은 BC 721년에 아시리아인들에게 정복당했으며 그 지파들은 흩어져 이스라엘의 사라진 10지파 중 하

         나가 되었다.

11

   요셉

 (두아들)

  므낫세

 에브라임

 

        모세가 죽은 뒤 여호수아의 지휘 아래 약속된 가나안 땅을 차지했다. 십이지파들의 이름은 야곱(하느님은 그의 이

        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었음)의 아들들이나 손자들의 이름을 땄기 때문에 히브리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로

        알려지게 되었다.  야곱은 첫째아내 레아에게서 6명의 아들 르우벤·시므온·레위·유다·이싸갈·즈불룬을 낳았다. 이

        가운데 레위만 빼고 모두 각 지파의 조상이 되었다. 그외 다른 2지파인 가드와 아셀의 이름은 야곱이 레아의 몸종

        질바에게서 낳은 아들들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또다른 2지파인 단과 납달리의 이름은 야곱이 둘째 아내 라헬의 몸

        종 빌하에게서 낳은 아들들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라헬은 야곱의 아들 요셉과 베냐민을 낳았다. 12지파 가운데 베

        냐민의 이름을 딴 지파는 있지만, 요셉의 이름을 딴 지파는 없다. 그 대신 요셉의 두 아들 므나쎄와 에브라임의 이

        름을 딴 지파가 있다. 팔레스타인 북쪽에 정착한 10지파는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10지파'로 알려지게 되었다.

12

 베냐민

 

        후에 유다 지파와 함께 유대민족을 구성했다. 베냐민이라는 이름은 야곱(이스라엘이라고도 함)과 그의 2번째 아내

        라헬 사이에 태어난 두 아들 중 작은 아들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다(→ 유대인). 모세가 죽은 뒤 여호수아는 이스

        라엘 민족을 이끌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 12지파에게 영토를 나누어주었는데, 그중 팔레스타인 중남부지방이 베

        냐민 지파의 몫이 되었다. 솔로몬 왕이 죽은(BC 922) 뒤 두 왕국으로 분열되자 베냐민 지파는 둘로 갈라졌고 이 지

        파의 영토도 양분되었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10지파에 속한 유대인들은 BC 721년 아시리아가 이 지역을 정복한 후

        역사에서 사라졌으며, 단지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10지파'라는 전설만 남아 있다. 남쪽 유다 왕국에 살던 베냐민 지

        파 사람들은 더 강력한 유다 지파에 동화되어 점차 자기 정체성을 잃어갔다. 오늘날 유대인들은 스스로 유다 지파

        와  베냐민 지파의 후손이라고 생각하거나 고대 이스라엘의 제사장 직분을 맡았던 레위인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이스라엘의 첫번째 왕 사울과 사도 바울로도 베냐민 지파에 속한다.

 

 

「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 ( 성경 누가복음10장27절 )

「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   ( 마가복음 8장36절 )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 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 (요한복음 3장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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